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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 - 그리고 일본의 반성문



1.

그러니까 그게 아마 1980년대 말 즈음이었을거야. 일본에서 베스트 셀러로 떠오른 책이 하나 있었거들랑. 어느 정도 베스트셀러냐 하면, 그게 우리나라에서도 왠만한 대학생은 그 제목을 한번 쯤 들어봤을 정도로 베스트셀러인거야. 그니까 내가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는 거겠지? 다른 사람들은? ㅋㅋ 벌써 까먹었겠지. 무슨 좋은 책이라고 지금까지 기억해주겠어? 안그래?

2.
근데 요즘들어 생각할 수록 그 책의 제목이 너무 재미있는 것 있지? 제목이 뭔지 알아? ‘「NO」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NO」と言える日本) ’이야. 뭔가 비슷하지 않아? 헐, 우리는 이제서야 NO라고 말하고 있는데, 얘네는 벌써 30년전에 NO라고 말할 수 있었다네. 우리가 얘네보다 30년 늦은건가?

3.
이 책을 쓴 사람은? 당시 전자기기 분야에서 전성기를 구가하던 소니 알지? 무려 그 소니의 회장인 모리타 아키오(盛田昭夫)씨가 쓴 책인 거야. 근데 소니 회장이 혼자서 책을 썼겠어? 당연히 글쟁이 하나 끌어다가 썼겠지. 그런데 그 글쟁이가 누구냐 하면,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慎太郎)라는 인간인데, 사실 글쟁이라기보다는 정치인이야. 우리나라와 중국에 대해 온갖 망언을 서슴지 않던 잡넘이라고 보면 돼.

4.
이 책의 내용이 좀 오진데, 어떻게 오지냐 하면, 아! 이 책의 목차를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목차가 대충 이래.

· 현대 일본인의 의식 개혁이야말로 필요하다
· 10분 앞 밖에 보지 못하는 미국은 쇠퇴한다
· 일본 때리기의 기저에는 인종 편견이 있다
· 일본을 때리면 표가 된다
· 미국이야말로 불공정
· 일본을 모방국이라 비판할 수는 없지
· 미국은 인권 보호의 나라인가
· 'NO'라고 할 수 있는 일본이 되어라
· 일본은 미국의 공갈에 굴하지 마라
· 일본과 미국은 피할수 없는 상호의존이다.
· 일본은 아시아와 함께 살아라.

ㅋㅋ 목차가 너무 재밌지 않아? 뭐 길게 얘기할 게 뭐 있겠어? 일본이라는 글자 대신에 한국, 미국이라는 글자 대신에 일본, 이렇게 바꿔쓰기 함 해봐. 뭔가 요즘 상황에 딱 맞는 100점짜리 답지 아니겠어?

5.
한 때 일본이 좀 나갔지 않아? 좀 나간다 싶으니까 온갖 건방을 다 떤거야. 그니까 이 책은 당시 세계 제 2위의 경제강국이었던 일본이 조만간 미국을 넘어설 수 있다고 호언장담한 책이었던거지. 뭐 거기까지는 그럴 수 있다고 봐. 그 때는 우리 나라도 이렇게 말할 수 있던 일본을 엄청 부러워했던 것도 사실이니까. 아마 당시 우리나라 경제모델이 거의 일본이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을거야. 심지어는 부동산 오르는 것조차, 우리 경제가 일본을 따라가는 것이라면서 오히려 긍정적인 신호로 해석하는 경향이 높았을 정도니까.

6. 이 책이 인기를 끈다 싶으니까 신타로가 몇몇 저자들과 함께 공저 형식으로 아류의 책들을 쏟아냈는데 예를 들면 ‘선전포고 「NO」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 - 미국 금융노예로부터의 해방 (宣戦布告 「NO」と言える日本―アメリカの金融奴隷からの解放)’, ‘그래도 「NO」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 – 미일간의 근본문제(それでも「NO(ノー)」と言える日本―日米間の根本問題)’ 등등이야. 일본애들 나름대로 미국에 스트레스가 많았나 봐. ㅋㅋ

7.
그 다음에 일본은? 무슨 분석이 따로 필요하겠어? 얼마 안 있어서 드디어 탈탈 털리기 시작하는거지. 몇 년을 지나보니까, ㅋㅋ 그 잘나가던 일본이, 잃어버린 10년 운운하더니, 조금 더 있으니까, 잃어버린 20년, ㅎ 이러하다 잃어버린 50년 안될까 몰러.

8.
이 책이 나온지 정확히 10년쯤 지난 후인 1990년대 말에 일본애들은 스스로 반성문을 써야만 했어. 서점가에서 재밌는 책이 하나 등장했는데 ㅋㅋ, 그게 뭔지 알아? ‘『「NO」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에 대한 반성(『「NO」と言える日本』への反論)’ 이라는 책이야. 후루타치 신(古舘 真) 이라는 작가가 쓴 이책은 제목 그대로 ‘「NO」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을 문자 그대로 저격해버린 책이야. NO 라고 말할 수 있다고 큰 소리 친지 10년만에 자기들 스스로 그럴만한 처지가 아니었음을 자인하고 만거지.

9.
「NO」라고 말하기는 쥐뿔. 일본은 미국에 대해 「NO」라고 말한 적이 없어. 그만큼 실력이 안되었던거지. 실력이 모자라면 조용히 실력을 기르고 있다가 때가 되면 그냥 「NO」라고 하면 되는 건데, 일본은 결코 그러지 못했어. 실력 자체가 안되는 상태에서 그냥 ‘우리는 「NO」라고 할 수 있다구, 할 수 있다니까’ 이렇게 외치기만 했지. 결국 뒤에서만 큰소리치다가 스스로 반성문을 쓰고 자멸한 셈이지 뭐.

10.
반면 우리는 어떤 것 같애? 우리는 한번도 일본에 대해 ‘「NO」라고 얘기할 수 있다’고 말한 적이 없지 않아? 그러더니 「NO」라고 얘기해야 할 때가 되니까 그냥 「NO」라고 말하고 있지 않아? 우리는 ‘「NO」라고 얘기할 수 있어’ 라는 따위의 허풍선이는 결코 떠벌이지 않지. 우리는 그냥 「NO」라고 직접 얘기하고 있는 거라구.

11.
「NO」라고 얘기하고 싶었지만, 결국 얘기하지 못했던 일본,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지만, 때가 되면 직접 「NO」라고 얘기할 수 있는 대한민국, 이것이 일본과 대한민국의 차이야. 바다를 아는 사람은 소란한 폭풍의 바다보다 고요하고 평온한 바다에서 더 강한 힘을 느끼지. 지금까지 일본이 떠벌이는 바다였다면 한국은 고요하고 평온한 바다였거든. 이런 것을 안으로 응축된 것의 힘이라고 하지. 응축된 것이 터져 나오는 순간, 그 순간의 힘이야말로 힘이라는 단어가 정의된 그 자체의 힘인거야.

12.
아무 말이 없던 우리가 진짜 「NO」라고 얘기해 버렸을 때, 너에 일본이 느껴야할 공포가 어떤 것인지, 나는 그게 지금부터라고 봐. 지금부터 잘 느껴보라고. 아무 말 없던 우리를 진짜 「NO」라고 말하게 만든 너희 일본이 지금부터 배워야할 것이 참으로 많을 거라고 느껴. 그리고 아마 그건 단순한 교훈을 넘어, 너희 일본인들에게는 역사적 교훈이 될 수도 있을 거야. 이 교훈을 잘 기억해 두기를 바래. 너희 후손들이 같은 어리석음을 반복하면 안 될 터니까.

2019년 7월 29일 모 카페에 올렸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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