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UncleJo.co.kr 로 접속하시면 바로 방문이 가능합니다.

무가베 - 건국의 아버지에서 최악의 독재자에 이르기까지(1)

만약 그의 삶이 온통 한 국가의 독재자에만 머물렀다면, 르몽드 인터넷판이 그의 부고를 제일 머릿기사로 올리는 일 따위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더우기 아프리카의 지도자들이 앞을 다투어 그의 삶을 칭송으로 마무리해주는 일은 더 더욱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96, 짐바브웨의 전직 대통령 무가베의 죽음이 전해지자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라마포사 대통령은 가장 먼저 논평을 내어 식민지주의에 대항했던 아프리카 운동의 주창자에 경의를 표했다. 그럼으로써 무가베가 오랬동안 이웃국가인 남 아프리카 공화국의 반 아파테이드(인종차별정책) 내지는 독립운동을 지원해왔음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켰다.


1979년의 무가베, 런던, 영국, AP

 
나미비아의 하게 게인고브 대통령은 그의 희생이 인종적 멍애와 식민지 압제로부터 남아프리카의 해방을 가능케 했다면서 나미비아 국민들은 그에게 깊이 감사한다는 말로 애도를 표했다. 남아프리가 개발공동체(SADC) 현직 의장인 존 마구풀리는 아프리카는 행동으로 식민지주의를 거부했던 용기 있고 결단력 있는 지도자를 잃었다고 애도했고 카빌라, 콩고 전직대통령 또한 아프리카는 위대한 범 아프리카주의자이자 독립투쟁의 영웅을 잃었다는 표현을 사용했다.
 
잠비아, 케냐, 브룬디, 나이제리아, 세네갈 등 크고 작은 아프리카 국가들이 그의 죽음을 진심으로 애도하고 있는 가운데, 그가 독재자였음을 언급을 찾아볼 수 없다. 서방의 정상들이 예의상 그의 죽음에 애도를 표하면서도 예외 없이 독재자로서의 그의 삶에 방점을 찍어 언급하는 것과는 확실히 차이가 있다.
 
1980418, 셀리스베리 스테디움에서 유니온잭이 하강하고 짐바브웨의 새 국기가 올라가던 그 날까지, 무가베의 삶 자체는 온통 짐바브웨의 독립에 바쳐졌던 숭고한 것이었음에 틀림없다.
 
그는 1924221, 지금은 수도 하라레가 된 당시 살리스베리의 서쪽 쿠타마에서 1924221일 출생했다. 쿠타마는 당시 가톨릭 선교구에 해당했고, 그 무렵 짐바브웨는 영국의 식민지인 로데지아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었다. 인종차별의 잔혹함을 직접 목격했을 뿐 아니라 식민지 침략자들에 대한 초기 아프리카 해방전쟁(Chimurenga)에 관한 얘기를 들으면서 자랐다.
 
어렸을 때 그는 친구들과 어울리기보다는 책 읽기를 좋아하고 말 수가 적은, 그렇지만 매우 재능이 뛰어났던 아이로 당시 선교사들이 증언한 바가 있다. 그의 나이 10살에 아버지는 다른 여자를 찾아 아들을 버리게 되는데, 이 일은 무가베에게 있어서는 평생 두 가지 상처 중 하나가 되었다.
 
이 때 그의 아버지이자 멘토 역할을 해 주던 한 선교사의 영향을 받게 된다. 아일랜드 출신이었던 그는 무가베에게 아일랜드가 어떻게 독립을 쟁취할 수 있는지에 대해 설명하면서, 그것은 영국에 저항할 수 있는 무력이라 얘기해 줬던 것으로 전해진다. 무가베는 이 말을 평생 간직했다고 한다.
 

(다음 글로 이어집니다.)


댓글 쓰기

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