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후에 집안에서는 하루 빨리 대를 이을 자손이 나오기를 바랐는데 아버지는 어머니를 삼년 후에 아기를 갖게 했다. 그 것은 두 부부만 알았다고 한다. 삼 년 후에 태어난 게 나다. 아들이 아니고 딸이라서 서운하기는 해도 처음 본 애기니까 대우는 받은 것 같다. 내가 세상에 나왔을 때 우리 집에는 할머니가 세 명이 있었다. 한 분은 진주 할머니, 한 분은 내 아버지를 낳은 할머니, 또 한 분은 할아버지 작은 부인인 할머니다. 나는 할머니들 속에 파 묻혀서 사랑을 많이 받은 것 같다. 어머니 태교부터 노인들 속에서 자란 나는 어렸을 때부터 노인이 좋았다. 내가 늙었는데도 노인이 싫지 않다.
내가 태어난 데는 아주 시골이다. 나는 그렇게 그 동네서 자라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가난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여자들을 공부 시키면 큰 일 난다고 학교는 안 보내셨다. 고모님들이 나보다 두 살 세 살 위인데도 한 분도 학교를 못 갔다. 나는 늦은 나이에 학교에 갔는데 십사 세 때 6.25 전쟁이 터졌다. 그래서 내 학벌은 그것이 전부다. 학교 가서 공부를 해보니 참 좋고 재미가 있고 공부를 많이 하고 싶었다. 한이라면 공부를 못한 것이 제일 큰 한이다.

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