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위기 9년, 그리스가 점차 위기의 늪에서 헤어나고 있다. 주로 관광산업에 힘입어 각종 경제지표들이 좋아지고 있고, 실제로 상가나 호텔등도 이전과는 달리 활기를 띠고 있다. 국민들의 분위기도 매우 낙관적이다. 그리스에 봄이 오고 있다는 얘기들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지난 한 해 동안 그리스를 찾은 관광객은 3200만명 정도로 추산되고 있다. 그리스 인구 1100만의 세 배에 육박하는 수치이다. 관광과 관련한 일자리는 약 98만8천개 정도로 그리스 전체 일자리의 4분의 1에 육박하고 있다. 이 분야의 GDP 규모 역시 전체 그리스 GDP의 20% 가량에 달할 만큼, 관광산업이 그리스의 경제회복에 주요한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
아테네에서는 새로운 호텔들이 등장하고 있다. 한 때 건물 곳곳에 붙어 있던 ‘임대’, ‘매매’ 등과 같은 현수막들은 이제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가 됐다. 외국인 여행자들의 계절적 임대수요가 증가하고 있고, 외국인 투자 또한 늘고 있는데 따른 현상이다. 문을 닫았던 상점들도 여기 저기 다시 문을 열고 있다.
그리스 경제는 지난 해 2% GDP 성장을 한데 이어 올해도 같은 정도의 성장을 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높은 수치는 아니지만 안정적인 성장이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수출도 지속으로 늘고 있다. 경제위기의 조짐을 보이던 2009년 연간 450억 유로에서 올해는 660억유로 정도로 예상되고 있다.
아테네 중심가의 경우 지난 한 해 동안 부동산 가격이 31%나 치솟았다. 본격적인 경제회복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신호다. 올들어 주식가격 역시 46%나 크게 올랐다. 최근 10년만기 그리스 채권 이자율은 14년만에 최저치로 떨어졌다. 투자자들이 그리스 투자에 대해 안심을 하고 있다는 증거다.
여기까지만 보면 모든 것은 좋아보인다. 그리스 경제가 회복되는 것은 단지 시간문제일 것처럼 생각된다. 하지만 모든 것이 다 순조롭지만은 않다. 지난 달 말 IMF가 내놓은 보고서 내용이 그 단적인 예다.
보고서에 따르면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그리스는 GDP의 25%를 깎아먹었다. 구매력의 동력 자체가 상당히 무너졌다는 뜻이다. 지난해와 올해 GDP 성장이 좋다고는 하지만 장기적 전망으로는 그리스의 연간 GDP 평균성장률은 0.9% 정도다. 만약 이대로라면 1인당 소득을 경제위기 전까지 되돌리는데 지금부터 15년은 더 걸린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리스가 우울해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실업률도 문제다. 그리스 통계청에 따르면 경제위기 이후 그리스의 실업률은 한 때 28%에 달했던 것이 올해는 16.9%로 떨어졌다. 많이 낮아졌다고는 하지만, EU 국가 중에서는 여전히 가장 높은 수치이다. 그나마 지난 9월 기준으로 일자리의 47%는 파트타임이다.
관광산업이 경제회복에 효자역할을 하고 있다지만 구조적 취약성은 쉽게 해결되기 어려운 난제다.
무엇보다도 그리스 관광의 경우 시즌이 매우 짧다. 관광객의 75%는 5월부터 9월 사이의 단기간에 걸쳐 있다. 게다가 대부분은 유럽 관광객에 의존하고 있다. 그리스 중도우파 매체인 카쓰메리니(Kathmerini)에 따르면 올해 1월에 집계된 금년 여름 그리스 관광객 예약 건수는 비록 작은 수치이기는 하지만, 전년보다 줄어든 상태이다. 그리스 전체가 촉각을 곤두세울 수 밖에 없다.
물론 그리스 정부의 노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 관광객 다변화와 관광상품 다양화로 이를 극복코자 모색하고 있다. 의료 여행이나 시니어 여행 등으로 상품을 확대하고 대상국가도 아시아와 아랍 에미리트 등과 같이 다변화함으로써 관광 성수기를 4월부터 11월까지 정도로 늘리는데 주력하고 있다. 하지만 쉽지는 않다.
그리스 의료부문의 경우 공공부문의 고용부족과 저임으로 인해 경제위기 기간 동안 약 1만8천명의 의사들이 해외로 빠져나간 상태이다. 공공의료 부문의 경우 현실적인 개선이 늦어지면서 인력부족 현상이 가시화되고 있다. 한 공공병원의 경우 올 연말까지 단기고용 계약이 갱신되지 못하면 3천여명의 인력 중에서 600여명이 빠져나가게 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그리스의 의료부문은 이미 심각한 타격을 받고 있는 상태이다.
관광수입이 그리스의 경제를 회복시켜준다고는 하지만, 부작용도 만만치는 않다. 소규모 단위의 인구로 구성된 그리스 관광지 섬들의 경우 밀려드는 관광객들로 심각한 주거난까지 발생하고 있다. 인구 2백여명인 에게해 인근 아나피 섬의 경우 8월 성수기에는 2천여명까지 관광객들이 몰려드는데, 대개 이들은 한 두 달의 단기체류자들이다. 물과 전기부족이 심각한 상태에 이를 수 밖에 없다.
관광지의 원주민 주거비용이 당연 중요한 문제로 부상하고 있다. 산토리니 같은 경우 외국인 방문객의 계절적 임대수요로 공무원들이 주거를 구하지 못하는 일이 흔히 발생하는데, 이들 공무원의 경우 경제위기시 줄어든 급여로 인해 가장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견디다 못해 미코노스 시는 이 섬을 떠나지 않는 조건으로 교사들과 소방관들에게 주거를 제공해주기로 결정했을 정도다.
그리스 정부와 노동계 및 환경단체와의 극단적 대립도 작지 않은 문제이다. 지난 7월 선거 승리로 취임한 키리아코스 미조타키스 총리는 이달 중순 의회통과를 목표로 ‘성장을 위한 대 법안(Grand Bill for Growth)’을 발의한 상태다. 외형적 목표는 사유화를 촉진하고 외국인 투자를 유도한다는 것이지만, 파업권의 제한, 단체협약권 철폐, 석유개발 등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어 노조의 반발을 사고 있다. 이미 지난 9월말과 이달 초에 걸쳐 이틀간의 총파업을 거쳐온 상태다.
이 밖에 2015년 알렉시스 치프라스 총리에 의해 중단됐던 그리스 북부 지역의 금광 개발을 그리스 정부가 재승인한데 대해서도 환경단체가 크게 반발하는 등, 경제개발과 관련한 갈등의 골도 점점 깊어지고 모양새다.
그리스 정부는 내년 GDP 성장률 목표를 2.8%로 잡고 있다. IMF의 당초 연평균 예상치 0.9%의 세 배에 달하는 수치다. 이를 위해서는 기반이 취약한 관광산업만으로는 부족하다는 판단을 내리고 있다.
하지만 다른 경제주체인 노동계의 반발, 의외로 영향력이 큰 그리스 안팎 환경단체의 반발, 이러저러한 요인들을 모두 감안해볼 때 그리스 정부가 의도하는대로 흘러가게 될지는 아직 미지수다. 오히려 얼마전 영국 토마스 쿡의 도산과 같은 국가 밖 악재들이 그리스 관광산업에까지 악영향을 미치게 될 수도 있다. 그리스에 봄이 왔다고는 하지만, 정말로 봄이 온 것인지 혹은 한겨울 속 얼마간의 따스함이었는지는 좀 더 두고 봐야 알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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