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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월 '서프라이즈'에 기고했던 글입니다.
당시는 상산고가 역사왜곡 역사 교과서인 교학사 교과서 채택을 고집했던 시기였습니다.
상산고는 교과서 채택을 마지막까지 철회하지 않겠다고 버텼던 2개 고등학교 중 하나였습니다.
상산고의 역사왜곡 교과서 채택과 무관하게 평소 제가 정석에 대해 생각하고 있던 내용이라서 다시 이 곳에 데려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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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학사 역사 교과서를 채택한 학교 중에 상산고가 들어있다고 합니다. 당장 ‘수학의 정석’책에 대해 불매운동이라도 해야 할 때입니다. 하지만 엄연히 입시가 존재하고 있고, 무수히 많은 학생들과 학부모가 입시에 목숨을 걸고 있는 현실에서, 상산고가 교학사 역사교과서를 채택했다는 이유만으로 불매운동을 이끌어내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정말 좋은 교재라면 애국심에 호소하는 것만으로는 먹히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가 생각하는 ‘수학의 정석’에 대해 입시준비서라는 관점에서만 잠시 써보려 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수학의 정석은 학생들에게 그리 좋은 책이 아닙니다. 학생들보다는 학원에서 사용하기 좋은 책 같습니다. 먼저 이 책의 구성을 살펴보면 크게 필수예제와 유제, 연습문제, 이렇게 세가지로 되어 있습니다. 필수예제 사이에 중간 중간 개념설명을 담고 있습니다.
대개 학원에서 수업방식은 이렇습니다. 선생님이 필수예제를 풀어줍니다. 매우 비슷한 유제가 바로 다음에 나옵니다. 그 유제를 학생들에게 풀라 시킵니다. 이 때 선생님은 잠시 휴식을 취할 수도 있습니다. 대개 학생들은 이를 잘 풀어냅니다. 좀 전에 봤던 것과 매우 흡사하기 때문이지요. 어쩌다 막히더라도 다시 선생님이 풀어주면 잘 이해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몇 문제를 넘어가면 이제 연습문제가 나옵니다. 물론 학원마다, 혹은 대상학년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가령 빠른 속도로 선행을 하는 경우라면, 이 중 몇몇 중요한 문제들을 골라 풉니다. 학생들이 대략 이해를 합니다. 나머지는 과제로 내주던지... 대략 이런 식으로 한 단원을 마무리하게 됩니다. 아니 그러기에 딱 좋은 교재입니다.
몇 단원이 지나면 학생들은 앞 단원의 내용을 거의 망각합니다. 재밌는 것은 이 교재의 특성상, 그리고 수업방식의 특성상, 앞단원의 내용을 거의 망각한 사태에서도 뒷단원은 전혀 새로운 단원인 것처럼 진도를 나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제를 풀고, 비슷한 유제를 풀고, 다시 연습문제... 별로 어려울 것이 없습니다. 적어도 많은 학생들에게는요... 이렇게 교재 한 권을 뚝딱 마칩니다. 그 다음은?
요즘 중학생들은 선행을 많이 합니다. 3학년 쯤이면 누구나 정석을 한권씩 들고 선행합니다. 많은 아이들이 고등학교 1학년 과정을 마쳤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른바 기본정석 중에서 가령 어느 단원의 연습문제중 무작위로 10문제를 골라 풀게 했을 때, 절반 이상을 푸는 학생은 드뭅니다. 그러면서도 진도는 마쳤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정석이라는 교재만의 잘못은 아니겠지만 정석은 그러기에 딱 좋은 교재입니다.
정석의 개념설명은 참혹합니다. 단원별로 최대한 작은 지면을 할애해서 개념을 설명합니다. 제가 오늘 아침 이 글을 쓰기 위해 2005년판 실력정석을 살펴봤더니 275쪽에 두 곡선사이의 넓이를 구하는 적분단원이 딱 한 쪽으로 요약설명되어 있습니다. 거의 요약과 간단한 설명이 주된 방식입니다. 어떤 것은 아예 생략된 내용들도 있습니다. 가령 시그마의 용법과 관련, 제곱의 합, 세제곱의 합 공식을 유도하는 것은 각 교과서에 잘 나와 있으니 이를 참조하라는 한 줄도 대체합니다. 이 교재는 ‘적절히 공식을 한 번 유도해보고, 그 다음에는 무작정 암기해서 풀이에 적용했던’ 저희가 공부하던 옛 시절에 딱 맞는 책이라 생각됩니다.
그런데 최근 수능의 경향은 철저하게 개념이해를 묻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단순한 공식암기와 이를 적용해서 풀 수 있는 문제들이 거의 없다는 뜻입니다. 이른바 유명 인터넷 강사들의 강의구성을 보면 개념설명에 정말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이 점에서 정석이라는 교재는 수능이 의도하는 바를 수용하기에는 부적절한 교재라는 생각이 듭니다. 옛 정석이 입시대비에 적합한 교재였다 치면 오늘날의 정석은 고작 ‘기본서’의 수준에 머물고 있습니다. 하지만 기본서 중에서도 부실한 기본서에 속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정석이 수십년 동안 베스트 셀러로서 지위를 굳혀오고 있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정석이 좋은 책이 되기 위한 노력을 얼마만큼이나 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필수예제의 문제들은 몇십년전 그대로인 것이 대부분입니다. 연습문제는 많이 바뀌었습니다만, 바뀐 문제의 상당수는 이른바 수능, 혹은 모의고사 기출문제 그대로이거나 몇 글자만 바꾼 것들입니다. 개념설명 부분은 거의 변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최근 몇 년 동안 ‘함성함수의 극한’ 문제가 수능과 모의고사에 단골손님처럼 등장했음에도, 정석에서는 이를 별도의 단원이나 소단원으로 여전히 할애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저 함수의 극한이 한 단원일 뿐이며 함수의 극한, 초월함수의 극한(이과용), 미정계수의 결정, 연속함수 이렇게 네 개의 소단원 뿐입니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 단원이 그 단원일 뿐입니다. 한마디로 이 책은 수능의 변화추이에도 매우 둔감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여전히 베스트셀러입니다. 그것은 이 책으로 공부했던 학부모들이 이 책을 거의 유일한 수학책으로 생각해왔던 옛 향수가 여전히 머리 속에 많이 남아있는데다가, 이미 말씀드린대로 학생들을 대상으로 수업하기에 좋은 그런 교재이기 때문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제가 어디에 있든지 김치에 향수를 느끼고 서양인들이 햄버거에 향수를 느끼는 것처럼, 옛 추억에 대한 향수와 가르치기 좋은 교재라는 현실적이 이해관계가 서로 맞물려 있는 것 같습니다.
언젠가 홍성대 선생님께서 모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정석이 일본책을 베낀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 ‘한 문제도 베낀 것이 없다, 한 문제라도 베낀 것이 있으면 가져와봐라, 우리나라 사람들을 낮춰 엽전이라고 부르지 않느냐, 엽전들이 이런 책을 낼 수 있느냐라는 생각에서 나온 말들이다’ 라는 취지의 언급을 하셨다 합니다.
이 말씀에서 홍성대 선생님이 우리나라 사람을 혹여 엽전으로 생각한다는 의미는 전혀 없는 것 같습니다만 왜 하필 우리 스스로를 비하하는 저런 표현을 쓰셨는지 항상 궁금했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상산고등학교의 교학사 역사교과서 채택은 어쩐지 우리 자신을 비하하는 것만 같아 ‘엽전’이라는 단어와 ‘교학사’라는 단어가 머리 속에서 동시에 떠오르는 것은 어찌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지금에 와서는 정석이 기출문제 베껴쓰기를 하고 있다는 것도 엄연한 사실입니다.

1 댓글
좋은글 잘 읽고 갑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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